TRS과 DMA 편법 활용···9개 상장사 주식 158억 상당 불법 공매도 혐의
관련 자료 해외서버 보관 이유 소환통보 불응
檢, 해외 사법당국과 공조수사 진행 중
그동안 버젓이 불법 공매도를 자행해온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소속 트레이더 3명을 총 158억원 상당의 불법 공매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는 불법 공매도 형사처벌 규정이 만들어진 이래 첫 기소 사례다.
이에 시장에서는 증권사의 감시 시스템 공백에 대한 우려와 함께 금융당국의 감시·규제 유명무실화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질적인 제도개선 없이는 향후에도 제2·3의 불법 공매도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불법 공매도 수사팀(팀장 금융조사1부 부장검사 권찬혁)이 전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HSBC 홍콩법인과 증권대차(SBL) 트레이더 A씨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HSBC 홍콩법인과 해당 트레이더들은 지난 2021년 8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주식을 차입하지 않은 무차입 상태임에도 국내지점 증권부에는 차입을 완료한 것처럼 거짓 통보한 후 11회에 걸쳐 9개 상장사 주식 318,781주, 합계 157억8,468만원 상당을 공매도 주문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이 이들을 재판에 넘기면서 무차입 공매도 관련 업계 실태로 주목한 건 크게 2가지로 ▲변종 총수익교환(TRS) 방식과 ▲증권사 직접전용주문(DMA) 운용 등이다.
일반적으로 글로벌 자산운용사는 공매도 주문을 할 때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전담 중개 업무(PBS·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를 하는 글로벌 IB에 거액의 수수료를 주고 실제 주식 거래는 글로벌 IB가 한 뒤 차익을 챙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변종 TRS 등장···자산운용사·글로벌 IB 공생 관계
불구속 기소된 트레이더들이 활용한 TRS는 손익을 주문자에 귀속시키는 단순 형태로 운용되는 여느 TRS와 다르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글로벌 IB 등은 주가가 떨어지면 받은 수수료보다 많은 금액을 주문자에게 줘야 하는 위험을 분산(헤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해당 주식을 공매도하고, 헤지를 완료한 범위에서만 매도 주문을 확정한다.
검찰 관계자는 “글로벌 IB로서는 주식 매도물량만큼 수수료 수익이 커지므로 보유물량 외 차입 공매도는 필연적이고 심지어 무차입 공매도까지 빈발한다”며 “공매도 주문량 중 일부는 최종 매매에 이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매도스왑 물량보다 더 많은 차입·무차입 공매도까지 실행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이런 구조를 악용해 사실상 글로벌 IB로부터 주식을 차입해 공매도하는 효과를 누리면서도 외부에 거래 명의자로 드러나지 않고, 법적책임도 전혀 지지 않으면서 배후에서 글로벌 IB의 무차입 공매도를 부추기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봤다.
허수아비 된 증권사···글로벌 IB, DMA로 직접 주문
이번에 검찰이 언급한 DMA 사례는 지난 13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공동주최한 공매도 토론회에서도 등장했던 내용이다. DMA는 글로벌 IB들이 증권사 전산망에 독자적으로 접속해 거래소에 직접 매도 주문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에 대해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당시 공매도 토론회에서 “증권사 DMA가 고빈도 단타 대량거래와 무차입 공매도로 수익률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 역시 정 대표의 주장을 뒷받침했다는 게 시장참가자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증권사는 글로벌 IB 측에 블룸버그 메신저로 차입 완료 여부를 말로만 확인하고 객관적 근거자료를 확인하는 시스템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 부터 BNP파리바증권은 지속적으로 잔액부족이 발생했는데도 원인을 파악하거나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로 과징금 부과를 받은 바 있다. 다만. HSBC증권 서울지점의 경우 확인의무를 다했다고 보고 제재 대상에서는 제외됐었다.
무엇보다 현행법상 글로벌 IB 등은 과징금·벌금 외 행정제재가 불가능하다는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범행이 적발되더라도 경제적 이익이 더 큰 상황에서 불법 공매도가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금융위와 금감원, 거래소 등 주무부처에 제도적 미비점에 대해 통보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글로벌 IB나 그 자회사인 증권사는 고액수수료를 챙길 목적으로 배후의 글로벌 자산운용사 등 외국투자자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법적책임도 지지 않고 국내 주식시장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남발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점검조차 하지 않는 등 불법의 도구 역할을 수행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번 불법 공매도 사건을 법인차원의 조직적 범행이라고 확인하고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현재 글로벌 IB 등은 무차입 공매도 관련 자료를 모두 해외서버에 보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동시에 소환통보에도 응하지 않는 상태다. 이 때문에 범행을 지시·결정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위 임원 등을 특정하지 못한 검찰은 현재 해외 사법당국과의 공조수사를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