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포스트
주요뉴스
가난한 자의 만찬 : 모디슈머 라면을 위하여
가난한 자의 만찬 : 모디슈머 라면을 위하여
  • 임연태 논설위원
  • 승인 2014.05.12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너는 절망에 익숙한 잡초다.
연탄불 위에서, 떨리는 젓가락 끝에서,
허기진 위 속에서,
죽은 기 펴게 하고
구겨진 자존심 일어나게 하는
끈끈한 질경이다. (라면 한 그릇. 이광석)

   ▲증권일보 = 임연태  논설위원
주말에 친구들과 경기도에 있는 삼성산에 등산을 하였다. 굽이 굽이 흐르는 산자락 사이에는 아카시아 꽃 내음이 진하게 흘러 나왔다. 산에 5월의 녹음이 가득하다. 정상에 올라, 가지고 온 여러 가지 음식을 먹으며 담소하였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더욱 맛이 난다.

산행 후라서 그런가, 아님 공기가 좋아서 또는 좋은 사람들 때문인지 지상의 맛과는 사뭇 다르다. 음식 하나 하나의 식감이 더욱 뚜렷하다.

친구 하나가 라면을 끊여준다. 라면을 먹으면서 요 근래 사소한 일상의 행복에 더욱 감사함을 느낀다는 말에는 삶의 성찰이 깃들여 보인다. 그래 그럴 거야. 산다는 게 그런 거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요새 계속적으로 오르는 라면회사들의 주가가 떠오른다.
요 근래 라면업종의 주가는 계속적으로 강세를 보인다. 매출의 지속적인 신장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시장조사기관 AC닐슨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국내라면시장은 2조 1000억정도의 시장규모를 가진다. 1위 농심이 65%를  점유하며, 2위와 3위를 14% 정도씩의 점유율로 삼양식품과 오뚜기가 경쟁하고, 그 뒤를 팔도라면이 차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의 삼양식품의 약진인데 한때 끝없는 하락세에서 최근 가열차게 오뚜기와 2위 경쟁을 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선전에 들고 나온 무기가  매운 맛 라면인 불닭복음면이다. 종전의 통상적인 라면인 국물 맛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액상스프를 첨가하여 매운 맛으로 비벼먹는 제품이다. 국물을 버리고 비벼먹은 매운 맛 라면이 라면순위 10위 안에 드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한번 먹어보시라. 굉장히 매웁다. 젋은이들이 더욱 좋아한다는데 왜일까 궁금하다.

한국인은 1인당 1년에 73개의 소비량으로 라면소비 세계 1위를 차지하는데 그중의 소비의 대다수가 매운 맛을 내는 라면인 것이다.  매운 맛에 대한 선호는 최근 더욱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최근의 경기침체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매운 맛은 원래 맛이 아니고 통증이다. 혀의 미뢰세포를 강하게 두들기는 통각이 뇌로 전달되면 뇌가 엔도르핀을 분비하여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불황이 되거나 사회가 침체될 때는 더욱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여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고 한다. 차가운 현실을  뜨거운 즐거움으로 달래라 하는 하느님의 자비로움 인가 보다.

최근의 라면소비의 중가는 ‘모디슈머’ 열풍에도 기인하고 있다. 모디슈머는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다. 기존 제품을 자기 입맛대로 재창조해 즐기는 소비자를 뜻한다.  소비자들이 취향에 맞추어 본래의 조리법을 무시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 간다. 불닭볶음면에 삼각김밥, 치즈를 섞어 먹는다. 해물라면을 맥주안주로 쓴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함께 조리한다. 우리나라 젋은이들의 창의성이 발휘되고 있다. 가난한 자의 만찬이다. 작은 호사다.

3년전쯤 담백한 하얀 국물 라면이 인기를 모았지만 급속도로 식은 적이 있다. 하얀 국물라면의 대표상품인 나가사키 짬뽕 매출이 감소하면서 삼양식품은 어려움을 겪고 지금도 그때의 주가 고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는 다를 까. 이러한 매운 맛 유행이 계속될까 필자도 궁금해진다.

현재 각 라면회사들은 국내의 수요의 포화성을 인식하고, 농심의 해외 수출전략을 본받아 모두 해외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올 초엔 영국 남자가 불닭볶음면을 먹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려 170만명이 이 동영상을 시청했다. 우리 라면이 국제화가 되어가고 있는 증거다. 이 모든 것을 반영한 결과가 주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되리라 본다.

이 문조 시인의 시로서 라면을 먹는 젋은이를 위로하고 싶다.

라면을 먹으며
인생을 돌아본다
수없이 꼬여 있는 라면발
꼬여버린 내 인생

무심코 채워버린
첫단추
운명의 매듭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려
되돌아가
다시 채울 수도 없구나.

그대 라면을 먹는 젋음이 너무나 부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