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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도 진단만 받으면 보상?…치매보험 자충수 둔 보험업계 부실 우려
건망증도 진단만 받으면 보상?…치매보험 자충수 둔 보험업계 부실 우려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2.26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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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 기준 까다로워지면 결국 소비자 피해…질병 코드 종류·무해지환급 여부 꼼꼼히 살펴야
▲ 메리츠화재의 '간편한 치매간병보험'은 판매 5일 만에 가입자가 5000명이 넘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은 메리츠화재 로고.

치매 보험 열풍이 보험업계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치매보험의 보험금 보장이 지나치게 높아 보험사에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한 경증치매 판단은 오로지 의사의 진단에 의존하고 있어 모럴 해저드 발생 위험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좋지만은 않다. 과거 삼성생명의 ‘요실금 보험 사태’ 때처럼 보상 기준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보험 약관상 치매 카테고리에 있는 질병 코드는 약 30개에 달한다. 실제로 보험금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경증 치매를 보장하는 보험 상품이 줄줄이 출시되고 있다. 지난해 말 메리츠화재가 건망증 수준의 경증 치매까지 보장되는 치매 보험을 출시해 순식간에 수만명의 가입자를 모집하는 등 ‘초대박’을 내면서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과거에 출시된 치매보험은 누워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중증 치매만 보장해 보상을 받는 소비자들이 적었다.

지난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과 동양생명, 신한생명,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ABL생명, 흥국화재 등이 올 들어 치매보험 상품을 새로 출시했다. 망설이던 삼성생명도 지난 18일 경증 치매 보험을 출시했고, 교보생명도 100% 적자라는 내부 반대에도 다음달 18일부터 보험을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은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현대해상은 판매 15일만에 1만건을 팔았고, 후발주자인 삼성화재도 지난주 사흘 만에 5000건을 판매했다.

문제는 메리츠 화재의 치매상품이 해외재보험사인 RGA재보험이 인수를 거부할 정도로 리스크가 높은 상품이라는 점이다. 경증 치매에도 진단금 3000만을 보장한다며 역대급 보험금 보장을 내세운 것이 문제가 됐다. 일반적으로 재보험사는 위험도가 높으면 재보험료를 올려 받지 인수 거절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RGA재보험의 인수거절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다른 보험사들의 상품도 리스크가 높은 것은 마찬가지다. 중증 치매에 비해 대부분 10분의 1수준의 보험료를 책정하고 있지만 건망증 수준의 경증 치매 발병률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740만명 중 75만명이 치매 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셈이다. 환자 1명당 치료비는 연간 2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치매 환자가 2024년까지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치매 측정 방식도 객관적이지 않다. 중증 치매부터는 화학요법 등 객관적인 방법으로 발병 사실을 입증할 수 있지만 경증치매까지는 오로지 의사진단에 의존한다. 그런데 실제 치매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판단하기 애매한 점이 있다. 허위진단 여부를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진단 여부를 둘러싸고 분쟁이 많이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불완전판매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다. 치매보험은 대부분 장기상품인데 간병비와 진단비를 따로 보장하다보니 보험료가 비싼 편이라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무해지환급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보험대리점(GA)이 해지시 보험료를 돌려받을 수 없는 상품이라는 점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판매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관련법에 따라 일단 보험사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보험사들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지난해 당기 순이익(7조2742억원)이 7.4%(5800억원)감소하는 등 신규 수익원 창출이 절실한 상황이다. 당기 순이익이 감소한 것은 보험업계 사상 처음이다. 종신보험이나 암보험 시장 등이 포화된 상태에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보험에 대한 수요가 늘자 보험사들이 이러한 위험을 알면서도 치매보험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8 삼성생명은 요실금보험 200만건을 판매하는 등 ‘대박’을 냈다가 예상치 못한 거액의 보험금 지급으로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판매 당시에는 요실금을 치료하기 위해 개복 수술을 받아야 해 수술 환자가 적었기 때문에 요실금 수술시 500만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특약을 붙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배를 열지 않고 요실금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수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시술도 간단한 데다가 보험사에서 500만원씩 보상을 해주니 수술비 130만원을 지불하고서도 평균 370만원이 남는 이득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상품판매를 중단했지만 최소 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의 추가적인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을 맞게 된 삼성생명으로서는 이후 보험료 지급 기준을 까다롭게 변경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결국 요실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 셈이다.

보험사들은 최근 암보험 지급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암보험을 판매할 당시 요양병원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치매보험도 당장 판매율은 높지만 앞으로 보험사 혹은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업계의 현명한 대처가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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